75년생 & 86년생 자매의 갑작스러운 이태원 만남
요즘 이런 저런 일로 고민도 많고, 걱정거리도 많아서 어제는 작업을 쉬었다.
혼자 조용히 카페에 앉아서 생각에 잠겨있다가 친언니와 카톡으로 수다를 떨게 되었다.
나는 늦둥이라서 내 바로 위의 언니가 나와 11살 차이가 난다.
근데 우리는 11살 차이가 무색하게 나름 쿵짝이 맞는 편이다.
올해 46세인 우리 언니는 또래에 비해서 마인드도 젊고, 밝은 편이다.
어쩔 때 보면 나 보다 더 해맑은 사람 같다.
아무튼 언니랑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 보니까 우울한 기분도 조금 걷히는 느낌이었다.
날씨도 좋고, 오랜만에 언니랑 동네가 아닌 다른 곳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기분전환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언니랑 이태원에서 급만남을 약속하고 이태원으로 향했다.
사람도 없고, 장사를 접은 가게 많던 경리단길
먼저 도착해서 언니를 기다리며 이곳저곳을 걸어 다니며 구경을 했다.
경리단길 주변을 걸어 다녔는데,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인지 사람도 많지 않고, 문 닫은 가게도 너무 많았다.
거의 한집 걸러 한집은 임대문의 종이가 붙어있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생기기 전부터도 경리단길의 높은 임대료 때문에 많은 자영업자들이 사업에 실패했다는 기사를 많이 접했지만 예전에 사람이 많았을 때 가고, 오랜만에 간 경리단길의 모습은 그 차이가 너무 커서 여기가 그곳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많은 건물주들도 임차인을 구하지 못해서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닐 것 같다.
그러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지만, 많은 자영업자들이 그 지역의 상권을 살려 놓았을 텐데...
지금은 이렇게 상권이 죽어버려서 새로운 임차인을 구하기도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경리단길의 상권이 죽은 데에는 높은 임대료 외에 다른 요인들도 많을 수 있겠지만 한때 핫플레이스라고 했던 상권이 이렇게 죽어버린 것을 보니 참 암담해 보였다.
이태원 클라쓰가 뭔디?!
언니랑 만나서 어느 식당에 갈까 고민하다가 솔직히 이태원 맛집을 잘 몰라서
작년 연말에 작업실 친구들과 함께 모임을 가졌던 더 버뮤다에 가기로 했다.
그래서 그 길을 찾아가던 중 녹사평역 근처 육교를 건너가야 했는데,
육교 위에 웬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다들 사진을 찍고 있는 게 아닌가!
남산이 보이는 배경을 뒤로하고 셀카를 찍는 사람들도 있고, 서로 사진을 찍어주기도 하고.
외국인들이 관광 와서 사진 찍는 건가? 싶은데 한국사람들이었다.
조금 의아했는데 언니가 "여기가 거긴 가보네!" 그러길래 뭐냐고 물었더니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에서 나온 장소라고 한다.
이태원 클라쓰 얘기는 들어봤지만 난 그 드라마를 못 봤어서 혼자 시큰둥했다 ㅋㅋ
언니도 혼자 사진을 막 찍길래 가만있기가 머쓱하기도 하고,
드라마를 떠나서 장소가 예뻐 보여서 사진을 찍었다.
남산은 언제 봐도 예쁜 것 같다.
두 번째 방문한 녹사평역 맛집 더 버뮤다
사실 이태원 맛집을 잘 몰라서 두번째 방문한 것도 맞지만 ㅎㅎ
처음 방문했을 때 맛있게 먹었기 때문에 또다시 방문한 것도 맞다.
그래서 내 기준에는 이곳이 이태원과 녹사평역 맛집으로 각인되어있다.
아무튼 이곳에서 잘 나가는 메뉴 중 하나인 명란 파스타와 루꼴라 피자, 생맥주 두 잔을 시켰다.
명란 파스타 소스는 따로 간이 안 되어 있으니, 명란을 골고루 섞어서 함께 먹으라는 안내를 받았다.
직원분 안내에 따라서 골고루 섞어서 먹으니 간이 딱 좋았다.
그리고 나는 루꼴라 피자는 엄청 쫄깃하고, 루꼴라도 신선해서 맛있었다.
적당히 느끼한 음식과 함께 마시는 맥주는 정말 꿀 맛이다.
경리단길에 비해 꽤 사람이 많았던 이태원 유흥가
더 버뮤다에서 배부르게 식사를 마치고, 소화를 시키기 위해 구경할 겸 이태원역 쪽으로 걸었다.
해밀톤 호텔 뒷골목 쪽으로 걸어 들어갔는데, 그곳은 정말 많은 술집들이 가득했다.
이렇게 말하니 나 정말 서울 촌년 같다 ㅎㅎㅎ
35년간 서울에서 살았는데 이태원에서 놀아본 적이 별로 없어서 어느 길이 핫한지 사실 잘 모른다.
그냥 이끌리듯 들어선 골목이 핫한 골목이었던 거 같다. ㅎㅎ
경리단길에서 느꼈던 것과 사뭇 다른 분위기의 길이 펼쳐졌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이제 지친 사람들이 많아서일까?
꽤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술집에 자리 잡아 앉아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모습이었다.
물론 그것도 평소에 비하면 정말 텅텅 빈 거나 다름없겠지만 말이다.
이태원 하면 떠오르는 게 작년 할로윈 때 사람들이 빽빽하게 붙어서 걸어 다니던 모습의 사진이다.
나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 곳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사진으로만 봤는데도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물론 그때와 비교하긴 그렇지만 코로나 바이러스 전에 이곳은 더 많은 사람들로 붐볐을 거라는 생각은 든다.
언니와 나는 느끼한 속을 달랠 겸 자그마한 국물 닭발 집에 가서 소주 한 병과 맥주 500 한잔을 시켰다.
언니는 소주파, 나는 맥주파다 ㅋㅋㅋ
근데 이미 저녁으로 배가 가득 차서 언니는 소주를 반 병을 남겼고,
국물 닭발도 절반 조금 못 되게 남기고 나왔다.
역시 배부르면 술도 안 들어간다.
닭발집을 나와서 예쁜 카페를 찾아봤으나 마감이 10시라고 해서
우린 근처에 있는 커피 스미스에 들어가서 커피 두 잔을 시키고 수다를 떨었다.
사실 우리의 수다에는 특별한 결론은 없다.
그냥 좋게 생각하고, 열심히 살자. 이거 하나인데 그래도 언니를 만나서 얘기를 나누고 나니 기분이 조금 홀가분해졌다.
그러고 나서 집에 가기로 하고, 언니가 타야 하는 버스 정류장까지 언니를 데려다줬는데
언니는 가방에서 오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며 기어코 나에게 쑤셔 넣었다.
밤이 늦었으니 택시 타고 가라면서.
자기는 버스 타고 가면서 나 보고는 밤에 춥다고 택시 타고 가라며 그렇게 힘까지 써가며 돈을 쥐어준다.
버뷰다에서 내가 언니 저녁 사주려고 쓴 46,000원이 결국엔 또 언니가 사준 꼴이 되었다.
항상 울 언니는 이렇다. 만나서 내가 좀 사주고 싶어 하면 그냥 받은 적이 없다.
자기 주머니에 5만 원 있으면 그 5만 원을 다 내어주는 사람이다.
언니가 쥐어 준 오만 원을 나는 주머니에 꾹 찔러 넣고, 버스에 올라탔다.
그리고 또 다짐했다. 진짜 악착 같이 돈 열심히 벌어야겠다고.
물론 사람이 당장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른다지만,
당장 내일이 나의 마지막 날이라고 해도 나는 이제 악착 같이 살아보려 한다.
이렇게 나를 아껴주는 가족들에게도 받은 거 다시 되갚으며 살려면 악착같이 살아야만 한다.
다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던 어느 봄날의 이태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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